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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유리 벽을 폐하라

📖 본문: 사 46:4🏷 분류: 예화
[월요 편지 3599] 2025년 6월 15일 일요일 노년의 유리 벽을 폐하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6월 15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장마철이라 그런지 후덥지근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사천면 산대월리 순포해변에는 만장(輓章)을 든 ‘조문객’ 150여 명이 긴 장례 행렬을 이루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장례식이라면 으레 침통하고 우울해야 할 텐데, 사람들은 활짝 웃고 떠들며 만장을 깃발처럼 흔들었습니다. 가만 보니, 만장마다 ‘위기의 여자’, ‘에쿠우스’, ‘파우스트’, ‘이어도’ 같은 낯익은 연극과 영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배우 박정자 씨(83)의 ‘생전 장례식’을 겸해 열린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각본·감독 유준상)의 하이라이트 장면 촬영 현장이었습니다. 형광 연둣빛 꽃무늬 드레스에 곱게 화장을 한 배우 박정자도 활짝 웃으며 자신의 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을 만나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우리 집에 달랑 남았던 세 식구는 끼니를 함께 먹지 않고 지내기를 20년 넘게 해 왔습니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흉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어이하리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음식을 흘리며 잡숫고 계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치아가 성치 못하니까 유난히 쩝쩝거리는 소리며 남은 음식을 닥닥 긁는 소리며…. 사위인 저의 남편 앞에서 보이는 어머니 모습이 영 마뜩잖았습니다. 그 무렵부터 우리 집안에서는 세 식구가 한 밥상에서 끼니를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괘씸한 것은 내 남편이란 사람이 장모와 한 상에서 밥을 안 먹는 것을 은근히 다행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먹을 식(食)자와 입구 자인 식구란 뭘 말할까요? 문자 그대로 함께 끼니를 먹으므로 한 식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보통 우리 집 저녁나절 풍경은 이렇습니다. 어머니 밥상, 남편 밥상이 따로따로입니다. 그럼 내 밥상은? 저는 어머니가 안 되어 보여 제 남편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 좋아하시라고 남편 혼자 밥 먹게 하기도 좀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어머니 방에서 남편은 마루 식탁에서, 그리고 저도 별수 없이 제 방에서 상도 귀찮아 쟁반에다 놓고 밥을 먹는 이상한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밥을 따로 먹는 것이 중요한 모멘텀(탄력, 가속도)이 되는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따로 밥상’ 계기로 어머니는 어머니 방에 갇혀(?) 살게 된 것입니다. 어쩌다 애들이 다니러 와도 애들은 통과의례 모양 할머니 방에 고개나 삐쭉 들이밀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모처럼 거실에 모여서 자식들과 다과를 들며 담소할 때도 어머니는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어머니 방에 다과 한 접시를 따로 디밀어 놓는 걸로 저의 할 일을 끝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가족 모임에, 그리고 가족들 담소에 거의 참석 못하신 거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노년기 중에도 상 노년기 중에도 상 노년기라서 그렇지, 이 글을 쓰는 저나 여러분은 아직 그런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도 벌써 젊은이로부터 그리고 자식들로부터 받는 대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가령 제 아들 쪽 친지에게 가족 초대를 받는 경우, 자식 중에도 가장 임의로운 딸이 “엄마, 이 저녁 모임에 엄마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저같이 당당한 어미도 그만 따라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 일일이 예를 들 수 있겠습니까? 늙어가면서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그 격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들처럼 우리 노년들도 사방에 쳐 있는 유리벽을 뚫고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출처; 나이가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고광애)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4] ●패배자는 모든 기회에서 위기를 보고 , 승리자는 모든 위기에서 기회를 본다.(윈스턴 처칠)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외로움’ 담당 차관 서울시는 지난해 ‘외로움 없는 서울’이라는 정책을 발표하고 이 업무를 전담할 돌봄 고독정책관 직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업의 하나로 지난 4월부터 외로움·고립감을 느끼는 시민에게 24시간 전화 상담을 제공하는 ‘외로움 안녕 120’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올 연말까지 3,000 건이 목표였는데 두 달 만에 5,000 건이 넘는 상담이 밀려들었습니다. 절반 이상이 외롭다며 그냥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전화를 건 절반 이상(59%)이 중장년층이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시 ‘수선화에게’에서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고 했습니다. 외로움은 희로애락과 함께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입니다. 통계청 2024 한국의 사회 지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21.1%가 ‘외롭다’고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외로움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고독사·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등 문제로까지 나아가면 한 개인의 감정 문제만은 아니게 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3년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전담할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외로움으로 인한 건강 위험이 비만이나 신체 활동 부족과 관련한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신설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고독사 문제를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정도입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외로움은 개인이나 특정 계층을 넘어 전반적인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20년 연속 자살률 OECD 1위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는 상황이라 담당 차관을 지정해 외로움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검토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성가족부를 키워주기 위해 자리를 신설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관련 부처를 만든 영국·일본에서 ‘외로움’에 대한 정책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출처; 김민철 기자)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노년은 단순한 신체적 쇠퇴만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고립이 심각한 고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노년의 유리 벽을 깨뜨리고 사랑과 존중의 공동체 관계를 회복하여 그들이 따뜻하게 소속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노년까지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고 사랑하심을 기억하며, 우리도 이웃과 가족에게 그 은혜를 실천해야 한다.

적용

가족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노년 세대가 소외되지 않도록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십시오. 특별히 일상의 작은 교제와 돌봄이 노년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됨을 잊지 말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생 붙드시고 품어주심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섬기기를 소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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