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리바이블

선생님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 본문: 빌립보서 4:8🏷 분류: 예화
[일요 편지 3626] 2025년 12월 28일 일요일 “선생님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2월 28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성탄절에는 기쁘게 잘 보내셨는지요? 돌아오는 새해에는 더욱 기쁘고 희망에 찬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잔뜩 흐립니다. 그리고 엄청 쌀쌀한 날씨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희망감을 가진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인지기능이 최대 30%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 한강성심병원 이병철 교수 공동연구팀은 65~90세 인지기능 정상 노인 15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에게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느끼십니까?”라고 묻고 응답에 따라 희망감 그룹(77명)과 비희망감 그룹(75명)으로 나누고, 신경 심리검사를 활용해서 각 그룹의 인지기능을 비교했다고 합니다. 분석 결과, 희망감 그룹의 인지기능 점수가 비희망감 그룹보다 약 20%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연령, 성별, 교육 수준, 치매 유전자(APOE4), 혈관 위험도, 음주·흡연, 우울증 여부 등 인지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변수를 보정한 뒤에도 동일하게 유지됐다고 합니다. 한편 중등도 이상 신체활동을 유지하는 경우, 희망감을 보고하는 그룹에서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전반적인 인지 총점이 약 30% 정도 높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혼자가 좋을 때도 있지만 결국 다시 외로워지고, 이를 이겨내기 위하여 누군가와 연결하려고 애씁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교직원 80여 명이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묵묵히 하루를 보내며 업무로만 얽힌 공동체에서 저는 처음으로 교무부장 일을 맡았습니다. 교무부장은 선생님을 돕고 학교의 전반적인 일을 조율하는 자리입니다. 잡일을 하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며 관계를 다시 배웠습니다. 매일 아침, 하루 일정과 회의 내용 그리고 생활 지도 중점 정보가 담긴 일일 교육 활동 공지문에 ‘오늘의 한 마디’를 적어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대화 속에서 얻은 문장, 누군가의 웃음과 고민, 속상하고 기쁜 일 그리고 작은 소망을 모아 하루를 여는 한마디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름조차 모르고 지내던 이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순간에 웃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공지문 속 문장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오늘의 한마디 좋았어요.” “제 이야기 같았어요.” 그렇게 대화가 오가며 관계가 자라고 마음이 이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일을 함께 시작할 용기가 되었습니다. 관계는 시작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복도를 걷다 마주친 선생님께 묻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출처 ; 좋은생각 2026년 1월호에서, 김성현 선생님) ●여러분은 여호와의 백성입니다. 여러분과 여호와의 관계는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슬퍼할 때에 살을 베어 상처를 내지도 말고 미간 위의 머리를 밀지도 마십시오.[신14:1] ●나로 인하여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바뀌리라는 그 믿음이 나를 살게 한다.(조해진)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기도 김포시 돌문로 15번길 45 다솜마을 아파트 103동 101호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우아한 퇴장'을 위한 마음의 자세 기분이 어떠세요? 시원섭섭하지요? 주위에서들 묻고 답합니다. 떠나는 쪽은 대부분 아무 실감이 없고, 떠나보내는 쪽에서 오히려 말이 깁니다. 그동안의 수고를 치하하고, 정년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치켜세우고, 덕담도 좀 보태고, 그러면서 아마 속으로는 시원할 겁니다. 시어머니가(또는 적이) 사라졌다! 드디어 우리 세상이다! 초년병 교수들의 단톡방, 그 이름이 놀랍게도 ‘머니 토크(money talk)’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입 시절부터 그렇게 집단 무장하면, 은퇴할 때까지 다들 재테크에 성공할 것이라 봅니다. 퇴임하는 교수들 관심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만나면 머니 토크입니다. 온 나라가 취업난, 민생고로 허덕이는 마당에 송구스럽지만, 은퇴의 실감은 오랜 세월 아지트였던 연구실에서 짐을 뺀 후, 또박또박 받아오던 월급이 뚝 끊기는 순간 밀려든다고 했습니다. 낭만주의 시인 푸시킨의 원고에서 빚 계산한 숫자들을 발견하고 웃었던 때가 떠오릅니다. 위대한 시인도 노상 돈 생각했습니다. 직종 직급 불문, 단순 연금 생활자들의 공통된 걱정이 그것입니다. 그 걱정은 품위 있는 여생에 대한 불안과 맞닿아 있는데, 가만히 보면, 불안의 요인이 돈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돈이 품위를 지켜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품위가 돈에서 비롯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잉여의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가와 관련된 것입니다. ‘인생 제2막이라 불리는 국면’에서는 지금껏 의탁해 온 공적 요새가 아닌 사적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몸과 정신을 위해 경제 자립은 기본이고, 생활의 일정한 자율 체계가 요구됩니다. 교수였던 사람은 어떤 형태로건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가장 쉽게는 번역 일을 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삶으로 자신의 남은 나날을 덮어쓰는 방식인데, 일종의 문학적 도 닦기에 해당합니다. 학회에서 원로는 대개 기조 강연을 하거나 사회를 보는 것이 통례지만, 계급장 떼고 일반 세션에 등장해 후속 세대와 나란히 논문 발표하는 것도 신선해 보입니다. 물론 학문과 전혀 무관한 영역으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전원생활로 전환하거나, 북 카페를 열거나, 지역 봉사를 하거나, 요리책을 쓰거나, 문화 가이드를 하거나┉. 어쩌면 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돈도 벌고 싶은데, 그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그레이스풀 엔딩(Graceful Ending). 우아한 마무리, 우아한 퇴장 등으로 번역될 수 있겠습니다. 만사 끝이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글 한 편 쓸 때도 방점은 마지막 문장에 찍힙니다. 그것이 여운이고, 여운이 감동입니다. 하물며 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삶의 소설’에서랴. “끝이 좋으면 다 좋아요. 끝이 승리의 화관이죠. 과정이 어떠했든, 남는 건 끝이에요.” 셰익스피어 희극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승부는 맨 마지막에 판가름 나는 것이니, 그때까지 두고 보라는 말로 들립니다. 굳은 결의와 희망과 인내심의 선포와도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은 그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원하던 남자를 남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레이스풀 엔딩 역시 ‘좋은 끝’입니다. 그러나 결이 좀 다릅니다. 이건 승부수 얘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끝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맺는가가 핵심입니다. 과연 무엇이 좋은 끝인가의 본질을 묻는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맺음은 어느 정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가치와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스풀 엔딩의 조건은 하나, 나는 맡은 바를 다했으니, 이제 너의 길을 축복한다는 선의의 다짐입니다. 연연해하지 않는 담박한 작별입니다. 아쉽게도 모든 소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는 않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헛수고가 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끝은 어김없이 옵니다. 삶의 마지막이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은 그 마지막의 전주곡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마음의 자세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네게 자리를 내주마/ 이제 내가 썩고 네가 꽃피울 차례다.” 서른 살 푸시킨의 이 시구는 자식을 향한 유언도, 소명을 다한 자족감의 과시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외롭게 분투했기에, 그는 항상 준비하고 연습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진짜 ‘좋은 끝’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던 겁니다. 나는 이제서야 그 연습을 시작했습니다.(출처 ; 김진영의 자작나무숲에서,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희망을 품는 마음과 따뜻한 관계 소통은 우리의 정신적, 영적 건강을 지키는 원동력이다. 작은 말 한마디와 마음의 연결이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적용

우리 삶에서 희망을 잃지 말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며 진심 어린 소통으로 서로를 격려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의 건강과 행복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다.

희망감인지기능노인 건강관계 회복교직원 공동체소통소망행복교무부장일상 소통삶의 의미마음 연결긍정적 마인드영적 성장우아한 마무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