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이나 모자람을 늘 돌아보며 그것을 바로잡거나 채우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의 자리에 이르면,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지는가 봅니다. 신학 교수가 되거나 큰 교회 담임 목사나 소문나는 부흥사가 되어 나라 안팎 곳곳으로부터 강사로 집회 인도자로 초청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 그만 늘 가르치는 데만 익숙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가꾸는 일은 소홀히 하게 되기가 십상입니다. 때로는 아직 많이 더 배워야 할 사람들이 갑자기 유명해지는 바람에 자신을 제대로 가꾸지도 못한 그 상태에서 모든 면에서 전문가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신학 공부 수십년, 목회 경험 수십년을 앞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끝없이 널어놓으면서도 자기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는 않는다고 하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마저도 자신의 경험과 이론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만 쓸 뿐, 그야말로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귀 기울이는 태도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고도 세계적인 신학자요, 세계적인 목회자요, 세계적인 부흥사라고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 그것을 당연한 말로 받아들이고, 아주 드물게 자신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아주 섭섭해 하고 심지어는 괘씸해하기조차 합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두려운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6절에서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라고 말씀하신 뜻은 다른 데 있겠지만, 이렇게 유명한 이들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길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저 유명한 이들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신학 교수나 큰 교회 목회자나 이름난 부흥사가 잘못을 저지를 때,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람 앞에서 바로잡으려고 힘쓰지 않는 한, 이들의 횡포를 통제할 길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박동현 교수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세상의 유명한 이들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다. 진정한 영원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