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엔 주재 네팔 대사를 지낸 비노드 비스타가 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의 친구 중 태국에 거주하는 친구가 있는데, 아버지와의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결혼, 아버지의 재혼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메울 길이 없어보였다고 한다. 한참 시간이 지난 올초에 비스타는 그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함께 지낸다는 얘기를 해왔다. 참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 친구가 들려준 얘기는 아주 뜻밖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늙어서 치매에 걸렸고, 과거의 중요한 일들은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갈등의 요소는 제거되었다는 것. 그 얘기를 읽으면서, 문제해결이 되긴 했으나 그것이 서로의 노력을 통한 이해나 수용에서가 아니라 망각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은 참 서글픈 마음이 들게 했다. 보다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대화와 양보, 타협과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때가 늦기 전에 우린 변화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상대가 혹은 내가 더 이상 노력을 할 기력이 다하기 전에 서로를 수용하는 방법, 또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 박정숙, 제주도 한림읍 한림리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