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링컨이 그랬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함석헌 선생은 스승이 될 수 있는 나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하루 이틀쯤 빠르거나 늦는 경우는 있어도 그런 대로 규칙적으로 있어온 달거리가 예정보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혹 임신이 아닐까 해서 불안한 마음에 꿈자리까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생명의 존엄성에 귀여운 늦둥이지 제법 여유를 찾은 듯한 마흔두 살 평범한 아낙에게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예배 시간에도 집안일을 할 때에도 어두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안됩니다’ 하는 강한 거부감만 드러냈다. 그러다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이 몸이 그 답을 주었을 때의 민망함이라니…. 평소에는 집안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시어머니가 오시는 명절이나 제사 때면, 어머니를 핑계로 텔레비전 앞에 턱을 괴고 누워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걸 볼 때도 내 표정관리가 제대로 된 적이 없었다. ‘시’자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독기어린 며느리의 마음을 내게서 느꼈을 때의 그 섬뜩함이라니…. 불혹을 넘어 깨달은 게 있다면, 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가슴 찔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스승님께 머리 조아리며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밖에 없을 것 같다. - 이영순,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2동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