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맨 처음 예수를 믿게 되는 동기나 계기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신비로운 계시를 받아 홀연히 예수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꿈속에서 황금 마차를 타고 온 천사들에 의해 구원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기 시작한 지 햇수로 꽤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껏 천사의 얼굴이나 자태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맨 처음 전도한 윤형주 장로님이 들으면 다소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 잘 부르는 그 양반이 지성으로 전도한 것 말고는 그 어떤 개인적인 ‘드라마’도 내게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나는 정말로 ‘그냥’ 무덤덤하게 혼자서 깨우침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는 윤형주 장로님의 불같은 전도와 십여 년 동안 조용히 기도해 오신 어머님의 힘이 작용했겠지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 이미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느껴 온 예수님에 대한 무의식적인 관심, 또는 드러나지 않은 영향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영향을 통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싹이 조금씩 자라난 것입니다. 가령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와 같은 책이나 <벤허>나 <십계>와 같은 유명 영화들을 통해서도 기독 신앙의 힘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느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만났던 기독교인들의 겸손하면서도 감사하는 삶의 모습들을 얼핏얼핏 관찰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역사’가 나와 같은 보통 사람에게 가만가만 소리 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보통의 역사’를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것이 가랑비에 옷을 적시는 그 물리적 이치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얘기인데, 기독교 문학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싶고, 기독교적 영화가 좀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며, 그와 아울러 우리 믿는다고 하는 이들의 행동거지가 이웃의 거울로 끊임없이 작용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영혼의 옷자락을 알게 모르게 촉촉이 적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네 보통 사람 하나하나가 알게 모르게 주님의 뜻을 이루는 ‘가랑비 메이커’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만재 | 카피라이터, 「막 쪄낸 찐빵」, 「소금 되어 만납시다」의 저자 생명의삶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