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첫 번째 글은 나와 아내가 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신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57년 11월 17일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한국 나이로 8세였습니다. 아버지 아처 토레이(한국명 대천덕) 신부는 한국의 성공회대학교 신학원장으로 봉직하도록 초청받았습니다. 우리는 1964년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가서 1년간 지냈습니다. 그 시기에 아버지의 비전은 기독교 공동체와 교회, 나라, 세계를 위한 중보기도의 집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1965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강원도 산간 골짜기에서 ‘예수원’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나, 다른 열 명의 형제가 낡은 군용 막사에서 6개월간 거주하면서 첫 번째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4년 뒤인 1969년에 나는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삶에 개입하셔서 나와 아내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아버지가 2002년에 소천하신 후 나에게 임했습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기 전날 저녁에 우리는 잠시 다니러 한국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와 예수원과 새로 시작할 삼수령 프로젝트를 맡으라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는 미국에서 여러 책임을 맡고 있었기에,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의 마음속에 예전에 없던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문이 곧 열릴 텐데, 교회인 우리가 준비돼 있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삼수령 센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북한의 개방에 대비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나에게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나의 52년 삶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그렇게 강력하게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는 삶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강력한 소명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나는 2002년 마지막 달에 임한 강력한 소명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북한이 열릴 때를 대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을 취하셔서 그 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005년에 한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벤 토레이 | 예수원의 삼수령센터 본부장 생명의삶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