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야드 키플링이라는 영국 시인이 쓴 시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가장 높은 언덕 위에서/ 목이 매달려 죽는다면/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할 자 누구인지 내가 압니다/ 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 짤막한 구절이 노래하는 것처럼 모정 가운데 가장 강한 일면은 자녀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알 브라운이라는 시인은 「십자가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는 마리아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그 발치에 서 있는 어머니는 생명을 주는 관계에 있었다. 아들은 육신이 못 박혔지만 어머니는 그 영이 못 박혀서 서로가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어머니는 그 아들을 지탱해 주고 아들은 어머니를 지탱해 주었다.” 저는 브라운의 주관적인 해석이 퍽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참으신 것은 인간적인 사랑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어머니라는 관계에서 볼 때, 브라운의 묘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 점점 상실돼 감을 느낍니다. 자녀의 무능력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어머니에게 있습니다. 자녀의 고통을 기쁨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어머니에게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갖는 힘, 우리는 이 위대한 사랑의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 옥한흠 <생명의삶 2009.1월>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