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예화 51. 削髮 父子 ( 삭발 부자 ) 니체는 19세기를 神이 죽은 시대라고 하였고, 마르쿠제는 20세기를 아버지가 죽은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포용의 원리로 자녀를 감싸고 아버지는 단절의 원리로 자녀를 대합니다. 이것을 우리 조상들은 嚴父慈母의 교육 원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성장기에 이 포용의 원리와 단절의 원리가 모두 필요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상실된 채로 성장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건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아버지 부재로 인한 사회 병리와 가정 병리 현상은 심각합니다. 이런 오늘의 세태를 고발하는 작은 일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대학 강사인 南 某씨는 어느날 신발장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사진이 붙어있는 대학생 학생증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아들을 불러 < 이 가짜 학생증은 무엇이며 이것으로 무슨 짓을 하였느냐? >고 다그쳤지만 아들은 묵묵부답입니다. 아들은 막무가내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의 탈선을 덮어둘 수 없었습니다. 남씨는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말하지 않자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값비싼 오디오 세트를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숴버렸습니다. 이 오디오는 정직하고 사랑스런 아들에게 사 준 것이지 탈선을 일삼는 부끄러운 아들에게 사 준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심한 꾸중을 들은 아들은 그 다음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근심과 걱정으로 며칠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며칠 후 저녁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은 삭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무릅을 꿇고 지난 잘못을 낱낱이 자백하였고, 잘못을 참회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남씨는 곧바로 관할 경찰서에 아들의 비행을 신고하였습니다. 남의 학생증을 훔친 데에 대한 벌을 받지 아니하고는 그 사랑하는 외아들의 새출발이 의미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경찰은 남군에게 사문서 위조의 죄가 있으나 정상을 참작하여 불구속입건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아들은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아버지도 자기와 똑같이 삭발을 하신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부등켜 안고 < 아버지 정말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 참뜻을 알겠습니다 >라면서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의 참 뉘우침을 보고 아들을 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 조선일보 1984년 6월 20일 색연필 )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