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예화 130. 산처럼 살고 싶습니다 산으로 갑니다. 산은 말이 없어 좋고, 산이 만들어 내는 온갖 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아서 좋습니다. 운무 자욱한 산은 신비롭고, 산의 숲은 나무들의 집합체라, 나무 하나 하나로 보면 어수선하고 복잡하나 산은 그 모두를 품어 순일한 단순성의 숲을 만들어 냅니다. 曰, 다양성 안의 일체감입니다. 산으로 갑니다. 배낭을 메어도 좋고, 맨몸이라도 좋습니다. 산에 오르면 天上天下唯我獨尊 가운데 바로 그 唯我(오로지 나만 이라는 그 나!)가 산 속으로 스며듭니다. 산은 열광적인 기도나 금식, 참선, 명상 등 어떤 인위적인 수단에 의한 몰아(沒我: Selflessness)나 황홀상태(Ecstasy)가 아닌, 사람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풀어주어 자연과 합하게 하여 자연 속에 깃 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산꼭대기에는 태고부터 산꼭대기에서만 살고 있는 서기로운 바람이 있어, 산꼭대기에 올라 온 사람을 두 팔 벌리고 반갑게 맞아줍니다. 산꼭대기에 사는 이 바람은 언제나 그렇게 서기롭습니다. 이 바람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작은 지혜를 날려보냅니다. 이 바람은 한 두 군데만을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확 열어 주어 시방(十方: 東, 西, 南, 北, 東北, 南東, 南西, 西北, 그리고 上, 下)을 보게 합니다. 이 바람은 꽉 막힌 사람을 탁 트이게 합니다. 하여, 산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사람임을 알게 합니다. 산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알게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합시다! 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진지 잡수실 틈조차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담담하고, 여유롭고, 넉넉하고, 번거롭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따로 산에 가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산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삶의 저 위대한 지혜, 산상수훈을 산에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변형 되사, 희어지신 곳도 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산처럼 그 자리에 계시는 듯한 느낌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산처럼 침묵하시는 느낌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처럼. 산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산처럼 견고한 신앙은 모든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견고함이 신앙공동체의 기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