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예화 154. 사마천의 존재 이유 사마천(145-86 B.C.)은 한나라 무제 때 사람입니다. 그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사관을 지낸 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한나라 태사령 이었습니다. 사관이나 태사령이란 국가의 역사를 기록 보관, 편찬하는 일을 하는 직책입니다. 기원전 110년, 한 무제는 태산에서 한나라 최초로 天神께 한나라를 아뢰고 제국의 번영을 비는 봉선제를 올렸습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으로 마땅히 이 국가적 의식에 참예하여, 봉선제의 시말을 기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무제는 사마담의 참예를 허락치 않았습니다. 사관으로서 사마담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었습니다. 사마담은 울분 끝에 병들었고, 아들 사마천에게 <자신이 계획해오던 중국 상고이래 한나라까지의 역사를 찬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였습니다. 기원전 99년, 한 무제가 북방 흉노족을 토벌하던 중, 한의 명장 이능 장군이 오천 병사를 이끌고 돌격대로 나섰다가 오만 명의 흉노족에 포위되어 중과부족으로 항복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흉노 토벌대 사령관은 무제의 애첩 이희의 오라비 이광리인 관계로 아무도 이능 장군을 두둔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마천은 단호히 나서서 이광리의 무능을 질타하고 이능을 옹호하다가 한 무제의 노염을 사 <宮刑>에 처해졌습니다. 궁형이란 남자 생식기를 짤라내는 벌인데 당시로서는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사마천 나이 40세 때였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살았습니다. 사마천은 그 때의 심정을 그의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똥통 속에 처박혀 사는 것 같은 현실을 참고 사는 것은 내 마음속에 맹세한 것을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원통해서이며, 이대로 죽는다면 내 문장이 후세에 전하지 못하게 됨을 애통해서 이다>라고 토로하였습니다. 옥중 생활 2년 후 사면을 받고, 중서령이 되어 한 무제 측근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이 후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 편찬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사기>는 天道란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그 자신의 통절한 의문 제기와 그에 대한 스스로의 해명 과정이었습니다. 기원전 91년 사마천은 불후의 대저 <사기>를 완성하였습니다. 궁형의 치욕을 참고 사마천이 존재한 이유는 <사기 편찬> 이었습니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