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산중 작은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봄엔 울타리 안에 새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여덟개나 낳고는 자라나 날아갔습니다. 겨울엔 진도개가 새끼 여섯 마리나 낳아 잘기르고 있습니다. 이미 네 마리는 분양이 되고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분양을 원하시는 분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미 아비 윗대가 모두 진도에서 천연기념물이었습니다.) 마당이 작을지라도 강아지가 뛰어노는 공간은 생명력이 넘치고 새끼들이 강종거리며 뛰노는 자태는 모든 생명의 어린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특히 어미 진도개가 보여주는 모성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태어난 후 이틀 동안은 바깥 출입도 없이 새끼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후 어미는 대소변을 가리고 온 후엔 자기 몸을 혀로 다 닦은 뒤에나 자기 집에 들어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립니다. 새끼들의 배를 일일이 핥아 배변을 하게 하고는 새끼들이 대소변을 보면 자기가 다 먹어치워 새끼들과 둥지를 깨끗이 치워놓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낳은 집에는 숫놈이 얼씬도 못하게 막습니다. 밖에 있다가도 숫놈이 새끼 곁으로 가려면 잽싸게 달려가 길을 가로막고 접근을 못하게 합니다. 어미는 평소 숫놈에게 늘 지며 지냈는데 이때만큼은 그 결의에 찬 어미의 짓는 소리와 태도에 숫놈은 움찔하고는 몸을 사립니다. 지난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강아지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눈이 평펑 갈수록 더 내리니까 지하실 쪽에 있던 어미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새끼들에게 장난을 걸어 새끼들이 줄을 지어 뒤따라 붙게 한 후 마당 한 바퀴를 돌더니 지하실로 이끌고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섯마리를 단번에 대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야단치고 짖어대지 않고 소리도 없이 즐거운 놀이로 이끌어 가는 꼴은 사람 사는 동네 유치원에서도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마당에서 저녁에 밥을 주려니 여전히 숫놈이 오지 못하게 어미가 길을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먹도록 하며 계속 경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머슥해진 숫놈을 보니 민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숫놈은 멀뚱거리며 기다리다가 후에나 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어떤 때에는 숫놈이 화가 나서 한번 해대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미 코끝은 늘 상처가 나고 피가 묻어나기도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방어망을 칩니다. 사람 동네에선 자식도 버린다고 하는데 이 동네 신문엔 자식버린다는 기사는 나오질 않습니다. 조금 전 캄캄한 밤에 새끼들이 이전과 달리 크게 짖어대는 소리가 나서 보니 어미가 싸움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새끼들에게 여러 방향에서 공격을 하면서 새끼들이 덤비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끼들은 악을 쓰면서 어미에게 덤비는 것이었습니다. 진도개 동네는 결단코 과외공부란 없고 오직 어미의 직강만이 존재합니다. 창조주께서 섭리하는 이 우주의 의식과 일치하여 행동하는 동물의 모성 속에서 생명의 길 사랑의 애뜻함을 봅니다. 이 밤엔 우주의 의식과 너무 멀리 벗어나 인위의 도시 속으로 유리되버린 인간성의 초라함이 작은 잔설 위에 나뒹굴고 있는 듯합니다.<연>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이 말씀은 우리가 기독교 영성과 성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이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실천적인 신앙으로 나아가길 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