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는 거지 바디매오의 외침에 주님은 침묵하셨다. 제자들은 잠잠하라고 거절했다. 바디매오에게 있어 거절은 티끌에 불과했다. 그는 티끌 같은 거절을 짓밟고 더 큰 소리로 계속 부르짖었다. 거절을 징검다리로 삼고 성큼 다가온 그의 목소리에 주님은 멈춰 서셨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네,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즉시로 고침을 받아 눈을 뜨게 되었고 예수님을 좇았다.(눅 18:35-43) 거절을 짓밟고 그것을 징검다리로 여긴 결과였다. 거절을 징검다리로 여겨야 한다. 거절을 짓밟아야 한다. 거절을 밟고 밟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사무적이군요. 너무 딱딱하게 느껴져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가 없군요.”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 말을 짓밟고 징검다리로 사용하였다. “제가 사무적이라고 느껴지십니까? 오해입니다. 저는 지금 매우 침착하게 당신을 대할 뿐이지 결코 사무적이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교만하군요.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군요.”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고 짓밟았다. 그 말을 징검다리로 사용해 말을 이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키우는 네 명의 아이들을 제 스승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매주 수백 권의 고전과 신간을 읽고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욕구 때문입니다. 저는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깁니다. 단지 복음이 아닌 것에 대해 거부할 뿐입니다. 성도님이 내게 말한 내용이 진정 순수한 복음인지 다른 복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 전에 만난 다른 한 사람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다른 목회자에 비해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군요. 순수성이 의심스럽군요.” 나는 그 말을 짓밟고 징검다리로 삼았다. “하하, 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제가 얼마나 순수한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제가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안에 성령님이 충만히 계시기 때문에 영원히 변함없이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저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순수합니다. 저는 주님을 전부로 여기고 있습니다. 단지 재력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돈을 기부하므로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일 뿐입니다.” 모든 관계에서 타인이 당신에 대해 아무렇게나 판단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율법사들의 오해와 비판, 추측을 징검다리로 삼고 그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므로 그들의 오해를 바로 잡으려고 하셨다. 그들이 받아들이든지 않든지 상관없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순간마다 당신의 진정한 의도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당신의 이미지 관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맡기지 말고 당신이 주도해 나가라.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고 주도적으로 직접 홍보하신 홍보의 대가이셨다. 거절은 기회의 징검다리다. 그것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도록 하라. 김열방 목사(잠실목자교회)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