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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 본문: 시 1:1-3🏷 분류: 예화
장미 속에 숨긴 가시를 주의하라 '데이트'란 무엇인가 데이트란, '날을 잡아서' 남자와 여자가 연극이나 음악회 내지 야유회를 함께 가는 정도로 가벼운, 그리고 반드시 일대일이 아닌 사교적 만남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결혼전의 만남을 통틀어서 데이트라 할 때 적어도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는 사교적 단계요. 둘째는 지속적 교제 단계요,셋째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약속 단계이다.사교적 단계는 배타성을 전제하지 않은 이성간의 우정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지속적 교제는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로서 사교적 단계보다는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훨씬 더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이런 지속적 교제가 무르익으면 결혼을 전제할 만큼 훨씬 더 서로를 결속하는 약속 관계로 발전하고, 나아가서 약혼 관계를 지나 결혼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 데이트가 주는 축복 '데이트'라고 할 때, 결과적으로 결혼으로 연결될 것을 소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혼을 준비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이트는 어떤 점에서 유익할까? 우선 이런 남녀의 만남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남자와 여자는 비유컨대 화성과 금성만큼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다고 하지 않던가! 어떤 의미에서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둘째, 인간은 처음에는 전적 의존단계에 있다가,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서서히 독립하게 되지만, 최종 목표인 상호 의존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일대일의 상호 보완 관계에 들어가 보아야 가능하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동성간의 우정을 계발해야겠지만, 이성간의 우정을 계발하는 가운데 우리는 에로스의 에너지를 필리아와 아가페로 승화하는 법을 배우며, 사랑의 참 의미와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 셋째. 더구나 우리는 상대방의 성에 비추어서만 자신의 성을 이해할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남성의 남성됨은 여성이라는 거울에, 여성의 여성됨은 남성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드러나며 계발된다. 이렇게 본다면 데이트는 잘되면 좋지만, '문제'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안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식으로 방치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데이트, 이렇게 하라 더구나 온갖 거짓되고 뒤틀린 생각과 풍조가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건전한 데이트를 도리어 권장하고 계도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 몇 가지 원리가 될만한 지침을 제시해 본다. 1. 감사에서 시작하라 데이트에 대한 요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상기시켜 준다. 성욕을 포함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님께서 프로그램하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이트는 반드시 결혼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하여도, 남성 혹은 여성의 인격을 형성해 가는데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정이다 2. 욕구의 본질을 이해하라 이성에 대한 그리움은 성적인 욕구충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성적 욕구를 인격과 분리된 생리적 욕구로 이해하고 또 그 자체만 충족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왜곡되고 비인간적인 것도 없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은 생리적인 것이 아니라, 지적. 정서적. 사회적 심지어는 영적인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3. 배타성을 전제하지 말라 '사랑한다고 꼭 결혼해야 되느냐' 는 말은 뭔가 거부감이 들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빨리 배타적 관계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배타적 관계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독립한 인격으로 '홀로 서기'가 되기도 전에 정서적으로 서로 의존적인 관계에 묶이게 되면, 인격은 더 이상 성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필요하면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배타적인 교제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것을 서로 합의한 상태에서 교제할 수도 있겠다. 이점에서 우리의 데이트 관계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4. 우정을 계발하라 둘만의 지속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는 이성과의 자연스런 만남과 기본적인 우정의 싹을 기초로 할 때에 자라난다. 잎도 나지 않았는데 꽃이 필 것을 기대하면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주변에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동성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과 친절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정을 계발하라. 사실 결혼 관계는 성생활을 빼면 배타적인 우정 관계에 다름 아니다. 5. 먼저 내 인격을 가꾸라 사람들이 어떤 배우자를 고르느냐에 대한 설명 중에 대표적인 것이 유유상종의 이론이다. 나의 됨됨이는 돌아보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을 고르려고 애쓰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인격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며 주어진 일과 환경에 성실한 태도로 임한다면. 그에 걸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리라. 사실 결혼 후 부부간에 생기는 갈등의 대다수는 결혼 이전에 개인의 인격이 안고 있던 문제에서 비롯된다. 6. 주님의 뜻을 찾으라 내가 원하는 사람, 우리가 원하는 교제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과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교제하도록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무엇보다 이 중대한 관계에서 그 보호와 감독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피차 그분의 인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도록 격려하며, 이차적으로는 서로가 상대의 마음과 의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라. 상대방을 내 기준에 뜯어 맞추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라. 7. 조건을 따지지 말라 옷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니듯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본질보다 그 사람에게 딸린 것들에 더 집착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외적 조건들 때문에 내적 본질을 놓치기 쉽다. 그리고 사랑이란 어떤 조건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수준에서 출발하면 스타트가 너무 늦어서, 자라더라도 더디며 미완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8. 사랑에 '빠지지' 말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은 실제 있는 것을 표현하고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바라는 바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 감정에 도취하거나 집착하게 한다. 실제로, 사랑하지도 않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오히려 잘 모를 때에)사랑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이 불일듯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참 사랑은 오히려 상대방을 위해 의지적인 수고를 각오하는 것이지 그저 자기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다. 9. '지나치게' 표현하지 말라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자라는 만큼 표현하여야지, 실제 친밀감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혹은 더 진하게 표현하면(신체적인 것은 물론 정서적. 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도), 상대방은 당황하거나 위협과 부담을 느껴 불쾌해 하거나 불편해 할 수 있다. 이런 '속도위반' 은 균형잡힌 우정의 성장을 오히려 저해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주는 것만큼 나도 준다는 식으로 계산적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하도록 하고 또 실제 친밀한만큼만 표현한다면 불필요하게 심리적 줄다리기를 하지 않아도 되며, 투명하고 자유한 관계와 교제의 즐거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10. 성적 자극을 하지 말라 결혼 이전의 성적 표현은 금단의 열매와 같다. 비록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과 기대로 욕구를 자제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막상 선을 넘어 보면 기대와는 달리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결혼 전. 밖의 성이다.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과 결혼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결코 우리의 행복을 유보하거나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다. 성적 표현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이성간에 우정을 계발할 수 있다. 이 점은 독신이나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천국의 삶도 그럴 것이다. *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만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은 신앙의 어떤 측면을 우리에게 교훈하는 설교이다. 진정한 신앙은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적용

이 설교의 메시지를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찾아 실행하도록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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