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은 하나님께 ‘왜 악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하나님은 잠잠하시는가?’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 선지자였다. 이방 땅에서 청춘을 바친 한 청년의 희생이 조국의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생존을 향한 그의 절규가 있었음에도 왜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가? 인질로 잡힌 한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정부만을 탓할 것인가? 국제정치의 복잡한 역학관계속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할 희생으로만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해당 국가를 향한 복수심으로 국민 정서를 몰아갈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이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하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선 이 비극적인 사건이 민족의 분열을 가져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고통은 사람을 치료하는 도구로 쓰인다.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폴 브랜드 박사는 아픔이 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이 잘라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심판이기에 그는 ‘고통이라는 선물’을 책으로 남겼다. 지금 우리는 감정적으로만 국민이 반응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또한 고귀한 죽음이라는 민족적인 고통을 통해 이 나라 정치 지도자가 어떤 태도로 국민을 섬겨야 할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이 비극을 전략적인 정치 이슈로 삼아 이용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오히려 유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함으로써 그의 희생이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새 마음을 가지고 정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청년의 희생이 아벨의 죽음처럼 가치 있는 희생임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에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아벨의 희생은 가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대면을 가져왔다. 회개없이 가인은 그 자리를 지나갈 수가 없었다. 동생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가인처럼 우리는 이라크를 위해 회개와 용서가 일어나기를 구해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란 말씀처럼 한 젊은이의 희생 앞에서 성숙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하여 슬픔과 비극의 강을 건너는 조국이 되기를 기도하는 성도가 되자. /박신일(밴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목사)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