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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의 운명적 만남

📖 본문: 전 3:1-2🏷 분류: 간증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의 운명적 만남"(04.4.29)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게 되었다. 처음은 미국에서, 두 번째는 한국에서 세 번째는 중국 상해에셔 보게 되었다. 같은 영화라도 장소에 따라서 서로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미국에서의 경험은 영화를 통해서 죽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예수의 수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두번 이상은 교회를 다녔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미국인이다. 그들은 문화 속에 기독교가 배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기독교를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같은 내용을 눈 앞에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가슴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면에 한국에서의 분위기는 문자적으로만 만났던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영상을 통해서 눈으로 보는 충격을 느끼는 듯했다. 예수가 채찍에 맞는 장면이 10분이 넘게 진행된다. 관객들은 거의 신음하는 수준으로 꿈틀댄다. 마지막 손에 못이 박히는 장면, 십자가가 세워지는 장면에서는 소리지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고통이 바로 나의 죄를 대신한 고통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장 회개의 자리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고통만을 너무 강하게 그리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역시 그리스도의 수난은 영화만으로는 다 전달되지 못하고, 설교를 통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 상해에서의 경험은 특이하다. 주로 유학생들 중심의 집회에서 집회 이후에 성금요일 저녁에 단체로 보게 되었다. 이렇게 저작권을 무시하고, 개인 집단에서 영화를 봐도 되는가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작정했다. 중국에서 상연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이미 중국의 많은 교회들이 오랜 기간동안 이겨내온 고난이었기에,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들의 이야기들이라고 느꼈다. 기독교는 역시 고난을 통해서 순수성이 드러나고,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난 지수가 제일 높은 중국에서 가장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가 능력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장소가 바로 중국이기도 했다. 2. 수많은 대비들 이 영화는 주로 대비의 기법을 통해서 메시지를 증거한다. 첫째 대비는 인간 예수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의 대비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그리기 이전에, 목수 예수가 높은 식탁을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어머니 마리아가 이런 식탁을 누가 사겠느냐고 할 때,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와 물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는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4세기 이후에 큰 논쟁을 벌였던 기독론을 다루고 있다. 기독론 논쟁, 즉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간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임을 증거하고 있다. 둘째 대비는 자살하는 유다와 회개하는 베드로의 대비이다. 가룟유다는 예수를 판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제사장에게 돈 주머니를 돌려주려 온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것을 거부한다. 돈 주머니가 떨어지면서, 동전이 흩어지는 장면에서 물질 추구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가룟유다는 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한다. 반면에 똑같은 예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회개의 자리로 나온다. 닭소리를 듣고 울부짖는 베드로, 바로 잘못했더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이다. 천국은 죄없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니라 회개한 자가 가는 곳이다. 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 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그 죄는 예수의 십자가로 인하여 다 씻겨졌다. 문제는 그 십자가의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느냐의 문제이다. 죄악에 빠진 세상에게 가룟유다의 길이 아닌, 베드로의 길로 돌아오라는 호소가 담겨있다. 셋째 대비는 우유부단하게 책임회피하는 빌라도와 예수의 대비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함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비거는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만든다. 그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대야에 물을 담아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다고 외친다. 빌라도의 대야는 책임회피의 대야였다. 이런 책임회피의 대야가 그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2,000년에 걸쳐서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외우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빌라도는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빌라도의 책임회피의 대야와 대비되며 나오는 것이 예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대야이다. 주와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을 통해서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진정한 힘이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대비는 예수의 채찍으로 맞는 모습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모습이다. 예수의 채찍으로 맞는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거의 10분이 넘을 정도의 시간이 채찍에 맞는 장면이다. 채찍 끝의 갈고리에 의해서 살점이 묻어 나오는 장면은 신음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로마 군병의 웃음 소리 속에서 채찍과 함께 살점이 흩어진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예수의 채찍 맞음이 바로 자기 대신에 맞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바로 이 채찍의 고난이 나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더 가까이 더 강하게 전달한다. 다섯째 대비는 구레네 시몬과 십자가의 대비이다. 예수는 채찍에 너무 맞아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한다. 시몬은 거부하다가 피할 수 없으니, 이렇게 소리친다. "나는 무죄하다. 다만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뿐이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장면과 예수와의 얼굴과 마주치는 장면을 통해서 구레네 시몬은 깨닫게 된다. 예수가 진 십자가는 사실 자기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이라는 것을! 여섯째 대비는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는 예수의 모습과 어린 시절 뛰놀다가 넘어진 예수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넘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제 십자가를 지는 모습 속에서 마리아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묘사한다. 십자가 상에서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다라고 외치며, 대신 돌볼 것을 부탁한다. 십자가 상에서도 인간적인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일곱째 대비는 십자가와 유월절 성만찬의 대비이다. 예수가 왜 고통 속에 십자가에서 죽어야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렸듯이, 지금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한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여러 대비들은 기독교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가 중간에 떠나간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 영화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이런 일련의 대비들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보는 것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다.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가장 귀한 자산이며, 우리가 낭비한 시간이 곧 낭비한 인생이다.

적용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보자.

시간영원성회개인생관잃어버린 시간기회후회삶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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