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갚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7.22.2005) 1. 받는 것을 다시 주라 :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없는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주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더 받은 것을 다시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7년간의 풍년을 주셨다. 그래서 곡식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 넘쳐나는 것을 나누라고 하신다. 넘쳐나는 것을 나누는 것이 뭐가 힘들겠는가? 형제들이 왔을 때, 그 넘쳐나는 곡식을 나눈 것이다. 또한 애굽의 총리라는 높은 권력을 주셨다. 그 권력으로 형제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더 받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성도의 자세이다. 2. 용서를 주라 :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 용서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A.W. 헌터는 이렇게 말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사단의 방법이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방법이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배신이다. 적어도 성도는 배신자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할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잘해준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수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갚는 하나님의 수준으로 성도가 살기를 원하신다. 결국 성도의 성장이란 바로 이 악을 선으로 갚는 삶, 용서를 주는 삶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하나님 닮은 모습은 용서하는 모습이다. 3. 용서가 살린다 : 빌리 그래함의 아내인 루스는 결혼을 이렇게 정의했다. "결혼이란 용서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다." 가정이 회복의 능력을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에는 용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자라나고, 부부가 서로를 세워주게 되는 것이다. 용서는 매듭이 묶인 줄다리기와 같다. 서로 잡아 당기면, 매듭이 더 강하게 조여 들어서 풀 수 없다. 그러나 한 쪽이 놓으면, 풀릴 수 있다. "용서하는 사람이 싸움을 끝낸다." 한쪽 줄을 놓아버리라. 용서하라. 그래서 각 곳에 쓸데없이 묶여 있는 모든 문제들을 푸는 종들이 되라.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나누는 것,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