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처를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타인의 상처를 비웃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에서도 타인의 상처를 보고 겸손히 같이 아파한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겸손히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정상을 향해 돌진하다가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수없이 실패를 맛본다고 할지라도 위대한 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오늘은 내가 기분 좋게 웃었던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허전한 날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단 한번의 큰 웃음조차 생성시키지 못한 진리라고 할지라도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지나온 삶에 병상의 나날과 고민의 나날이 많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인생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산다는 것이 오랜 병을 앓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러한 삶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지만 자신의 모습을 갈고 닦아 대리석처럼 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잡석(雜石)처럼 보잘것없을지라도 미래의 보석으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때때로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꿈이 깨어지지만 이 세상의 꿈이 깨어지는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됨을 확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꿈이 깨어지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 깨어진 꿈을 영원한 목적으로 흡수하여 최종적 선으로 바꾸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때때로 주변의 사람들이 다 떠나 고독에 처하게 되지만 오히려 고독을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고독으로 인하여 절망에 빠지지 않고 고독 자체를 친구로 삼아 힘찬 내일을 열어 가는 사람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선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세상적 즐거움을 똑같이 누리지 못하는 제약을 받지만 그러한 제약을 감당하며 양심의 진보를 이룬다면 이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제약된 생활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양심의 자유함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외로운 자, 억눌린 자와 같은 온갖 약자를 위해 활동하다가 때때로 강자에 의해 서글픔을 당하지만 그래도 약자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 스스로의 안전성을 내거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칭찬을 받을 만한 인생이 되십시오! 고난을 당할 때가 있거든 고난 앞에서 당황하기를 멈추고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있거든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연출하십시오! 믿욤에는 삶의 내용도 있어야 합니다. /이한규 목사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