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과 대화를 하는데, 아들과 딸과 대화의 모습이나 내용이 다르게 됩니다. 아들 앞에서는 무게를 잡고 좀 무겁게 대화가 되는데 딸 앞에서는 영 무게가 안잡힙니다. 어느날 비를 맞고 집에 들어 오는데 딸이 보고, “아빠-아, 불쌍해” “야, 너 목사 보고 불상(佛像)하라고”하면서 껴안으려 하니, “절로 가”하고 딸이 밀어 붙인다. 그래서 톤을 높여, “나보고 절(寺)로 가라고”하니까 “아이고 아이고(I go)”한다. 그래서, “니가 가려고”하니 식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 바다를 이뤘습니다. 딸 하고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집에서 합니다. 그러니까 집 사람이 아들들에게“야 느그들도 교은이 처럼 아빠와 좀 얘기를 해라”했답니다. 그러니까 “엄마 우리가 누나처럼 아빠한테 하면, 아마 아빠가 눈이 휘둥 그래져 재들이 미쳤나 하실것”이라면서 둘이 키드득 키드득 웃더랍니다. 하긴 내가 아들들에게 무게를 잡고 힘을 주고 말을 하니 그들도 내게 올 때에, 인사를 할 때에 아주 무게를 잡습니다. 그래서 딸 앞에서는 좀 무게를 잡으려고 해도 영 안되고, 아들들 앞에서는 좀 무게를 안잡으려고 해도 자연히 무게가 잡힙니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요. 저는 농담을 잘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진지하게“당신은 농담 때문에 하나님이 안 쓰셔, 농담만 안하면 하나님이 크게 쓰실텐데, 하나님의 종은 농담하면 안돼”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종이 돼 볼려고 농담을 안하고 있으면 만나는 사람이“화났어요”합니다. 그러면 또 우스개 소리를 하면 듣다가, “아이 썰렁해”합니다. 그러면 “내가 설렁탕을 좋아하거든”그러면, “아이 추워”합니다. 내가 다시, “내가 추어탕도 좋아 하거든”하여튼 이런 식이니 성도들 앞에서도 영 무게가 안잡힙니다. 그러나 사실은 열로 이뤄진 사람인데 (성열). 예수님은 제자들과 사역을 하실 때에 무게를 잡고 거룩하셨을까? 농담도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게를 잡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고 하셨는데 (요15:14), 친구가 무게를 잡으면 친구가 안됩니다. 하나님도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보다는 사랑의 하나님, 유머도 있으신 하나님이시지 않을까요?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시는 중에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부인 사라의 나이 89세 때에“명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하시니 그 말씀을 듣고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라를 부르시고 “너 왜 웃냐?” 하십니다. 이 때 사라가 정색을 하고“웃지 않았어요” 하니“아들을 낳으면 이삭(웃음)이라고 지어라”하십니다. 주여, 제가 무게를 잡으면서 목회할까요? 주여, 제가 무게를 잡지말고 목회할까요? (2001, 10).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