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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 본문: 요 3:16🏷 분류: 신앙훈련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이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고 느끼고..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 같아요.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이러한 인식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 쉽게 [좋아하신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주님은 우리를 좋아하신다..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시편 103편 13절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긴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죠.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시나요? 이 우주를 지으신 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 나를 좋아하신다.. 그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하시고 만지고 싶어 하시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하시고.. 나를 애처롭고 여기고 있다는 것.. 그분이 나를 좋아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나요? 그런데, 이 기본적인 사실을 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는다면 정말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아주 기쁘고 신이 나죠. 그런데 이 자신감과 기쁨이 별로 없어요. 많은 분들이 낙심과 좌절과 열등감.. 들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고.. 잘 생기지도 못했고.. 부모들도 부자가 아니고 힘이 되는 배경도 없고.. 그래서 풀이 죽어 있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면 그것들이 문제가 되겠어요? 이 우주를, 세상을 지으신 분이 나의 편이고 나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근심, 걱정, 염려.. 들이 우리의 배후에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죠. 주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와 사랑하심, 준비하심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래서 혼자서 온갖 걱정 근심에 쌓이게 되죠. 하지만 주님의 함께 하심과 사랑하심을 신뢰한다면 그러한 많은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될 거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물론 그것은 옳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시작은 회개가 아닌가? 철저한 회개 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요. 물론 그 말도 전적으로 옳아요. 하지만 이런 측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가가 출생했을 때, 엄마는 그 아가에게 먼저 군기를 잡지 않아요. 순종을 가르치고 악성을 버릴 것을 요구하지 않아요. 일단 먼저 안아주죠. 설레는 가슴으로.. 감격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그 아가를 안아주어요. 저도 그랬지요. 처음에 아가를 안아주었을 때, 가슴이 설레서 터지는 줄 알았어요. 아들을 보려고 아가가 있는 병실의 문을 머리로 쾅! 하고 박아서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죠. 병실의 문이 투명한 문인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게 안 보였어요. 피가 조금 묻어있는 작은 천 보자기에 쌓여있는 조그만 딸아이를 처음으로 안아주었을 때 나는 미치는 줄 알았어요.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사랑스럽고 가슴이 설레는지.. 눈물만 나왔죠. 나같이 나쁜 놈에게 왜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를 보내주셨는지.. 정말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왔어요. 아가가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정말 놀랐어요.. 아이가 너무 이쁘게 보이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죠. 아들 녀석은 군대 가서 지오피에서 고생하고 있죠. 그래서 보고 싶지만 기도만 해요. 하지만 딸은 같이 있으니까 밤마다 사랑을 표현하면서 잠을 재웁니다. 대학생이지만 제가 보면 아가죠. 그래서 [우리 아가.. 왜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럽지?] 하면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토닥거리면서 잠을 재워요. 아이는 [아빠는 내가 좋아서 죽겠나봐..] 하면서 내 품에 안겨서 팔을 베고 잠들죠. 그런데 이 아이가 나중에 엄마가 되고 중년이 되어도 내 눈에는 그냥 아가 같고 천사 같을 것 같아요. 이 아가가 조그마했을 때, 기어다니면서 내 등으로, 머리로 기어올라다니던 때의 모습이 항상 내 마음의 기억 속에 있으니까요. 우리 집은 한 살이 지나면 징계를 시작하죠. 자기 맘대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종하며 그 의지가 아직 어릴 때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가르치기 시작해요. 세 살이 되기 전에 이 아이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가르치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니까요. 하지만 한 살 전까지는 혼을 내지 않아요. 아가가 아무 것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그 때는 그냥 안아주고 만져주고 자꾸 뽀뽀하고 아가가 잠자고 있는 모습을 지칠 때까지 쳐다보죠. 아가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제 배위에 올려놓고 재우곤 했지요. 아가의 체온이, 그 무게, 느낌이 너무 황홀했으니까요.. 아가는 조금 지나면 교육을 받아야 해요. 요즘 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도 마구 성질을 내고 고집을 부리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죠. 그것은 교육이 잘못된 거에요. 그렇게 살 때 주님을 거스르게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하지만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아가는 엄마가,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것을 먼저 익혀야 해요. 그러한 사랑, 관계의 기초 속에서 교육이 시작되어야 해요. 그 사실이 충분히 습득되어야 해요. 딸아이는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는 빗나갈 수가 없다고..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아빠의 가슴이 찢어질 거니까.. 그건 정말 견딜 수 없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랑의 관계는 좋은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이죠. 믿음을 시작할 때 이 기초가 분명해야 해요. 주님은 우리를 좋아하신다는 것.. 그분이 피를 흘리고 찢기며 죽는 것을 기쁘게 여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해요. 주님은 우리가 악하고 제 멋대로인 상태를 결코 용납하시지는 않아요. 주님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이지 우리 안의 악성과 죄성과 욕망이나.. 이런 것들을 내버려두시지는 않아요.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주님의 인도와 프로그램 속에 들어가면 서서히 박살이 나기 시작하죠. 주님을 알아갈수록 사소한 죄들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요. 주님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시거든요. 아가가 사랑스럽다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는 없어요. 조금 지나면 가르침을 시작해야 해요. 하지만 죄도 회개해야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문제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법도 배우고 순종도 배워야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해요. 주님은 우리를 좋아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기를 즐거워하신다는 것을요. 여러분.. 여러분을 보시는 주님의 눈 빛을 아세요? 그것은 사랑으로, 긍휼로 가득한 눈빛이에요.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와 하시는.. 사랑이 가득한 시선이죠. 에베소서 4장 30절에 이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근심을 하실 때가 있어요. 우리가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악의 길로 행하고 주님을 아프시게 할 때 우리 안에서 근심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죄를 지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에요. 남을 비난하거나 화를 낼 때 가슴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나요? 누구나 가슴이 답답하죠. 그런데 그 근심하시는 것이 사랑의 근심이에요. [저 나쁜 놈을 그냥.. 가만히 두나 봐라..] 하는 것이 아니고 [아.. 내 사랑하는 이 아이가 왜 이럴까..] 하고 슬퍼하시고 아파하시는 거에요. 그 근심 안에는 사랑의 마음이, 사랑의 아픔이 담겨 있어요. 주님은 그처럼 우리를 보실 때 기쁨의 사랑을 가지고 보기도 하시고, 슬픔어린 근심어린 사랑의 눈으로 보시기도 해요. 얼마 전에 가까운 이들과 여름 수련회를 가졌는데, 주님의 풍성하신 역사들이 많이 있었고, 다들 주님의 임재가 아주 선명하게 되었어요. 저도 가슴이 너무 뜨거워져서 한동안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하루는 센터에서 회원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고 사랑스러운지.. 집에서 견딜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모임에 갔죠. 가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분.. 지금은 메시지를 전하러 온 것이 아니고 모두를 한분씩 안아주고 싶어서 왔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메시지를 마치고 모든 분들과 한분씩 포옹을 했어요.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면서요.. 많이들 우시고, 저도 눈물이 흘렀지요. 만일 사역자가 집회 장소가 아닌 개인적인 만남이나 공간에서 포옹을 하면 그건 좀 이상하겠지요. 그런데 집회에서 주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감동이 흐르는 상태에서는 포옹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인도하는 모임에서는 서로 포옹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자주 시킵니다. 물론 동성끼리만 시키는 데 대부분 눈물이 그치지 않고 서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나중에 억지로 떨어뜨리곤 하지요. 주님의 시선이 임할 때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한분 한분이 사랑스럽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도, 아저씨도.. 너무나 이쁘게 보이지요. 주님이 이들을 너무 사랑하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조금 성장한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적을 받아야 해요. 처리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아직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 잘 성장이 안 된 이들은 이 기초에서 분명해야 해요. 주님이 그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아야 해요. 그래야 속이 건강해져요. 죄를 이기는 것은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그 사랑에 대한 인식에서 와요.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 성적이 나쁘면 채찍으로 때리겠다고 온갖 위협을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아요. 눌리기만 하겠죠. 하지만 학생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치면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지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진노가 아니고 사랑이에요. 저의 아이들이 뭘 잘못했을 때 제가 혼을 내곤 하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매를 들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제가 매를 들거나 야단을 칠 때까지 무덤덤하다가도 나중에 제가 가슴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펑펑 울면서 회개하게 되요. 아빠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랑을 느낄 때 아이들은 회개하고 순종하며 주님을 사모하는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되지요. 왜 사람들은 신앙의 깊이에 더 잘 나아가지 못할까요? 왜 죄를 짓고 육체의 욕망과 자아의 만족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마음, 주님의 사랑, 그 달콤함을 잘 몰라서 그래요. 기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지,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몰라서 그래요.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쓰레기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당신에게 얼마나 놀라운 호의를 가지고 계신지.. 처음에 충분히 인식하고 깨달아야 해요. 저는 자주 이렇게 기도해요. [주님.. 왜 저 같은 쓰레기에게 사랑을 베푸십니까..] 주님은 그저 말씀하세요. [나의 은혜와 사랑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기도하지요. [주님.. 저는 너무 개판이에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단다..] 우리는 울면서 고백할 수도 있어요.. [주님.. 제가 얼마나 사악한지.. 정말 저는 죽어 마땅한 인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너를 사랑함으로 피를 흘렸단다..] 이 사실을 인식하세요. 우리는 개판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좋아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사랑의 시선으로 보고 계세요. 그러므로 그 사랑의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니까요. 은근히 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나는 완전히 박살 날거야. 나는 개판으로 살았으니까.. 주님과 가까이 교제하고 있는 영성인들을 만나면 나는 완전히 박살 날거야.. 그는 내 속의 죄를 다 알고 망신을 주고 혼을 낼거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아는 분이 있다면 그는 여러분의 영을 회복되는 것을 도와줄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만나시면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하고 말씀하실 거에요. 주님은 당신을 꾸짖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겪어보면 그 꾸짖음의 말씀이 얼마나 달콤한지.. 아름다운지 느끼게 될 거에요. 당신은 눈물로, 통곡으로 주님께 회개하고 죄송하다고 고백하겠지만, 그러나 그 눈물과 통곡과 탄식과 한숨의 토로가 얼마나 천국같은 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주님.. 죄송해요.. 저 또 개판을 쳤어요. 엉엉.. 안 그럴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하고 말하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 너도 혼자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알지 않니.. 이제 나와 함께 하자. 나와 함께 걷자.. 이제 내가 같이 있으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단다..] 이 좋으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세요. 주님과 오늘도 동행하세요. 주님과 따로 자기 혼자 살지 마세요. 주님과 떨어져 나 혼자 살고 있다면 뭘 해도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마음속에 [나는 아니야. 내가 얼마나 못됐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주님은 나 같은 것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자격이 없어..] 하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선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주님은 당신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이며 당신은 기도의 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며 은총의 순간인 것을 곧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좋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그것을 경험할수록.. 그것을 누릴수록.. 그 사람은 변화된다.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할렐루야.. - ⓒ정원 목사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주님이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영원한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적용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더욱 깊이 주님께 헌신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주님의 사랑구원은혜기독교 신앙영원한 사랑주의 사랑헌신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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