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졌고 , 중이염으로 양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중복 장애를 가졌다 . 가정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도 하고 남의 집살이도 하면서 대학도 남들보다 뒤늦게 진학했다 . 청년 시절은 암울했다 . 사방을 둘러보아도 절망과 한숨뿐이었다 . 그러나 내게는 " 너에게도 희망이 있다 " 고 , "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것 " 이라고 예언 같은 믿음을 주셨던 노부부 교수님이 계셨다 . 내가 수업시간에 귀가 안 들려 늘 옆의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서 공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나를 친자식처럼 여겨주셨다 . 창업할 때도 자금 500 만원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 선뜻 정기예금을 해약해 그 10 배인 5000 만원을 대주셨다 . 나중엔 집까지 저당잡히며 사업에 쓰라고 내주셨던 분들이다 . 바로 이분들 덕에 기업을 일구었고 , 그래서 오늘 기꺼이 이 사회를 위해 기부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나는 어느 정도 사업에 성공한 후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2 억원을 기탁했다 . 그리고 다른 사회사업이나 교육 , 문화예술 , 선교 등에도 힘이 닿는 대로 기부했다 . 사람들은 내가 부자인 줄 안다 . 그렇지 않다 . 조그만 기업의 창업주일 뿐이다 . 차량 유지비가 아까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다 . 집에는 냉장고가 낡아 붉게 녹슬어 있다 . 아내는 불만이다 . 그래도 냉장고 속은 아직 하얗다고 호통을 쳐서 잠재운다 . 생일날 외식 한번 시켜달라고 조르는 아들에게 버릇없다고 훈계로 때우기도 했다 . 집을 나와 하늘을 보면 ,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얼른 고개를 숙여 땅만 보고 걸었다 . 공짜로 운동한다고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렸다 . 지금은 정상적인 다리의 관절마저 마모되어 지팡이에 의지해 산다 . 양복은 10 년이 더 된 것이고 , 넥타이는 선물 받은 것까지 합쳐 4 개다 . 회사에서 이면지를 쓰지 않는 직원을 보면 호통을 친다 . 50 년 전 ,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만 몸서리칠 정도로 가난했던 그때가 내 생활의 눈높이가 되었다 . 많은 사람들이 더 채우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본다 . 나는 그저 덜어내면서 살려 한다 .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롬 12:18> <이주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