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가며 기다리던 설날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가 가래떡을 빼 오셨다 . 우리 형제들은 우와 !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조청에 쿡쿡 찍어 먹었다 . 꿀맛이었다 . 항아리에서 꺼내 온 단술은 시원했다 . 설날 아침에는 고은 설빔으로 단장했다 . 우리 집이 큰집이어서 친척들이 모이면 잔칫집처럼 벅석거렸다 . 상에는 음식이 가득했다 . 황금빛 놋대접에 담긴 갖가지 꾸미의 떡국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갔다 .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게 무슨 벼술 올라가는 것 같았다 . 일곱 살 되던 해 , 어머니는 세 딸에게 똑같이 분홍색 한복을 지어주셨는데 앞산 진달래꽃 같았다 . 어른들에게 세배 드리면 덕담 끝에 세배돈을 주셨다 . 세배돈으로 무얼할까 생각했다 . 집앞 점방에서 금박 무늬 찍힌 리본을 사서 꽂으니 나비가 된것 같았다 . 마당에는 널판이 있었다 . 한복입은 동네 처녀들이 꽃 무리 지어 왔다 . 나는 예쁜 영애언니와 널뛰고 싶었다 . 그런데 언니가 널판을 갑자기 세게 밟아 내 몸은 공중으로 날다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 피가 흘렀다 . 급기야 어머니 등에 업혀 병원에서 이마 여섯 바늘을 꿰매는 소동을 벌였다 . 초등학교 5 학년 설날 , 머리맡에 한복이 없었다 . 이상해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이제 다 컸다며 코르덴 바지와 반코트를 준비했다고 하셨다 . 한복이 아니라니 ....... .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는 옷을 마당에 내동댕이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 방 안을 도토리처럼 떼굴떼굴 구르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 어린 소견에 머리에 혹이 생기면 어머니가 놀라실 것 같아서였다 . 설날 정초부터 초상난 듯 운다고 꾸중 들었지만 막무가내였다 . 한참 울다보니 목이 아팠다 . 그때 작은 언니가 한복을 마련해 주겠다고 귀띔했다 . 그 말에 울음을 그쳤다 . 언니는 즉시 덜커덩거리는 삼천리 버스를 타고 교동시장으로 가서 노란 비단 저고리를 사왔다 . 내 품에 꼭 맞았다 . 치마는 어머니의 자줏빛 치마를 줄여서 만들어 주었다 . 중학교 3 학년인 언니가 학교까지 먼 길 걸어 다니며 모은 차비로 동생 소원을 이루어 준 것이다 . 철부지 나는 매화꽃 그려진 거울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파랑새가 내 어깨 위에 머물던 , 행복한 설날이었다 . <김인숙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박하 님의 " 어린 시절의 설날 " 좋은생각 2011 년 2 월 호> <이주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