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암스트롱 1901년 뉴올리언즈의 빈민가 음침한 뒷골목 사창가에서 그 방면의 불우한 흑인여성을 어머니로 하여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뒷골목에 버려지다시피 한 성장환경에서 가난한 한 흑인소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초를 다 겪으면서 컸으니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 없습니다. 부모 사랑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상적 가정환경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채 성장한 불쌍한 소년한테 하나님께서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허락하신 모양입니다. 원래부터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는 재즈의 본바닥이었습니다. 밤거리의 어느 골목, 어느 접객업소에서나 으레 흘러나오는 것이 흐느적거리는 재즈가락의 흥이었습니다. 소년 루이는 술집에서 잡일이나 심부름을 하면서 드나드는 악단 사람들로부터 틈틈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천재성을 알아본 악단 사람이 어느 날 그를 견습생 단원으로 고용한 것이 소위 아메리칸 재즈의 전설을 새로 쓰게 한 위대한 역사의 시작인 셈이 되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 올려 영혼을 울리는 듯한 그의 강렬한 트럼펫 연주 소리는 진정한 음악에 목말라하던 북미대륙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약관 20대 초중반에 자신의 밴드를 소유하게 되었고, 귀 밝은 레코드 업자들이 다투어 루이를 데려다 연주 취입을 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LA, 시카고, 뉴욕으로 불려 다니다가 나중에는 유럽에까지 진출하여 흥겨운 미국식 재즈를 대중화하는데 앞장섰습니다. 1971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기까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즈의 황제’였고, 사후에는 ‘재즈의 영원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이름은 20세기의 미국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상위순위에 꼽힌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분이 숨겨놓은 세상사는 맛의 묘미가 바로 ‘인간승리’라고 하는 히든카드임이 입증된 것에 다름이 아니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뒷골목 흑인창녀의 아들도 내버리지 않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눈으로 주위의 불우 소년 소녀들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만재 (카피라이터,‘막쪄낸 찐빵’저자)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