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산다고 하면 반응이 셋으로 나뉜다 . 면구스럽게도 " 착한 며누리네 ." 가 단연 으뜸이다 . 두 번째는 " 진짜 ? 너 용감하다 ." 식의 까칠한 반응이다 . 세번째 반응이 가장 재미있고 뜨끔하다 . " 복 받았네 !" 요즘 시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며느리 없듯 , 손자 키워주겠다는 시부모도 찾아보기 힘들다 . 두 아이를 데리고 1 년간 스웨덴으로 해외 연수를 떠날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일과 가정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벗어나 , 복지 선진국에서 살게 된 기쁨이 큰 탓이었다 . 그런데 6 개월 만에 생각지 못한 그리움에 빠져 들었다 .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학업 생활을 병행하다 완전히 녹초가 된 것이다 . 천장이 뱅뱅 돌고 , 먹는 것 마다 토해 냈다 . 몸무게도 순식간에 7 킬로그램이나 빠졌다 . 시어머니가 해 주시던 , 바글바글 끓인 강된장에 밥 한 공기 비벼 먹으면 금새 일어날 것 같았다 . 스톡홀름 아파트 문 밖에 시어머니가 서 계신 꿈도 꿨다 . 사정을 들은 시어머니는 " 내가 날아가랴 ? 우짜꼬 , 우리 새끼들 , 내 메누리를 ." 하며 울음을 터뜨리실 태세였다 . 전화를 끊고 " 어머니 , 아이고 아파라 ." 하면서 통곡했다 . 살림에 젬벵인 며누리에게 허구한 날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언제고 벗어나고 싶던 시어머니 품이었다 . 헌데 그 품이 그리울 줄 누가 알았던가 . 그것은 시어머니 몫이던 살림 , 말 그대로 ' 사람을 살리는 일 ' 의 소중함 , 그 숭고한 가치를 타국에서 간절히 깨달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어리석게도 그제야 , 10 년 넘도록 집안 살림을 도맡아 주신 어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큰 희생을 요구했던 것인지 깨달았다 . < 서신 가족이신 김인숙 님께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출처 - 김윤덕 님의 ' 나는 시어머니와 산다 ' 『 좋은생각 』 2011 년 9 월 호 *하루 한단 기쁨으로 영성의 길 오르기* 오늘 하루 종이컵을 쓰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행성에 작은 나무 한 그루 심은 셈입니다. <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