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겹인생 “미국 교환교수 시절 외국교수들을 보면 그들의 취미생활은 수준급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합니다. 그들을 보면 우리는 일 외에 즐길 만한 것이 없는 외겹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바쁜 생활이 우리의 여유를 빼앗아 가지만 정작 일을 그만둔다 해도 막상 할 일이 없어요. 몇 겹의 인생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행복일 것 같아요.” 사석에서 한 노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일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지금 이 시기를 벗어나면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다 처리되고 지겹기만 한 학교를 졸업한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열심히 일해서 일찍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 같다. 그러나 막내가 중학생만 되면 여유가 생길 것 같지만 다루기 힘든 10대 자녀는 언제나 부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또 아이들은 어느새 성장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늙어가고 미래에 대한 꿈은 덧없이 사라져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똑같은 인생을 살아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하나의 인생이 아닌 또 다른 나를 갖고 사는,세겹인생을 사는 사람이 느끼는 인생의 행복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풍요로운 듯하다. 아프리카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슈바이처 박사는 신학자였으며 능숙한 오르간 연주자였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비발디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교육가였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음악가가 아니면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요리를 좋아해 요리책까지 냈다. 이들 모두 평생을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산 사람들이 아닐까. 자녀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폭넓은 행복을 맛보게 해주면 좋을 듯하다. 즐길 줄 아는 스포츠와 다룰 수 있는 한 가지 정도의 악기,누군가를 경외하는 신앙심이 있다면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교육 환경 속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자칫 그 시기에 달성해야 할 정서적인 발달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어른이 돼버리고 만다. 그러나 학교교육에서 충족될 수 없는 부분을 가정에서 충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달에 한 번은 가족이 함께 하는 문화의 날을 정해 음악공연,박물과 관람,여행 등을 하며 감수성을 계발한다면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정서를 가질 수 있다. 이때 자녀들이 인생을 계획하는 안목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늘 기억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처럼 아니 우연처럼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행복은 시작된다. 우린 매순간 행복해 하는 연습을 해야 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지현 국민일보 기자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때 생명이 풍성해진다.
적용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섬기는 것을 시작해보자. 작은 사랑의 실천이 공동체를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