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리바이블

무죄

📖 본문: 잠 31:8-9🏷 분류: 설교
파도 소리만 밤을 지키는 어촌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재순 엄마, 밖에 누구 왔나 봐?” “오기는 누가 오겠소. 이 밤에.” 밖에 인기척이 났다. “거 누구요?” 남편은 밖을 향하여 소리치고 문을 열었다. 남편의 외삼촌이었다. 평등 사회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6.25 때 월북했는데 고향을 찾아 온 것이다. 북한이 살기 좋은 천국이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같이 월북하자고 했다. “삼촌, 난 안갑니다. 아가 다섯입니다. 그리고 삼촌 아시다시피 난 예수쟁이입니다. 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 싫습니다.” 삼촌은 결국 남편을 설득하지 못하고 북으로 갔다. 이듬해 삼촌은 다시 간첩으로 서울에 왔다가 중앙정보부에 검거가 되었다. 나와 남편,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다른 일가친척들과 함께 가족 간첩단으로 몰려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심문은 혹독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어, 불어. 불지 않으면 살아 나가지 못해.” 수사관들은 구두 굽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 원하는 답을 하지 않을수록 더욱 고문은 혹독해졌다. 물에 얼굴을 처박고 주리도 틀었다. 잠도 안 재우고 송곳으로 다리를 찔렀다. 수사관들은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서로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고문했다. “하나님, 이 고통을 이기게 해 주십시오. 우린 간첩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는 다른 가족의 비명소리를 듣는 것은 고문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두 달 동안 고문을 당하였지만 아무도 간첩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얼마나 세뇌를 당해서 이렇게 독하냐? 이미 너희들은 간첩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어. 불어. 너희가 불던 안 불던 이미 너희들은 가족 간첩단이야.” 대통령 선거가 있기 2달 반 전에 붙들려갔다. 선거일이 가까울수록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고문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그 때 옆방에서 고문 받던 남편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왔다. "제발 죄 없는 우리 마누라는 살려주세요." 무뚝뚝한 남편이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의 입에서 마누라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내가 불 테니 우리 가족들 생명만 살려 주세요.” 남편의 외마디였다. 남편은 간첩으로 몰려 두 눈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족 간첩단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대통령 선거는 여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남편의 거짓 자백 덕으로 가족은 모두 풀려났지만 남편은 41살의 나이로 사형을 당하였다. ‘내가 그렇게 심하게 비명만 지르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도 기도했는데 남편을 죽게 하다니.’ 출감한 후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악착같이 고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와 한 살인 막내까지 5남매를 키워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나 때문에 남편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믿고 있다. 교인들도 간첩의 가족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상종해 주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하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식모살이를 했다. 그러나 그 수입으로는 가정을 꾸려갈 수 없었다. 공장에 나가 밤샘 일을 하였다. 아이들을 바르게 기를 수 있는 것은 가정예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아침이면 온 식구가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남편 10주기 추모 예배를 드린 날 시어머니는 용서를 해 주었다. “재순 애미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오해했다. 이렇게 재혼도 하지 않고 아이들 잘 길러 주고, 내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도 나에게 잘 해주어 고맙다.” 시어머니도 오해를 풀고 91살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에겐 아버지의 무덤을 '할아버지 산소'라고 둘러대고 성묘를 다녔다. 차마 "아빠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버이 날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딸이 편지를 주었다. “무슨 편지냐?” “응, 엄마 사랑한다고. 오늘 어버이 날이잖아요.” 편지를 열어 보았다. "엄마, 할아버지 묘라고 성묘한 곳 저희도 아빠 무덤인지 다 알아요. 더 이상 거짓말하느라 힘들어하지 마세요." 편지를 붙들고 한 없이 울었다. 웃음을 잃고 한을 품고 살아왔지만 간첩의 자식이라는 아이들의 누명만은 풀어 주고 싶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기구한 사연을 알렸다. 법원은 재심을 받아들였고 중정 수사관 5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음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용서해 주고 싶었다. “저는 30년의 모진 세월 웃음을 잃고 한숨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용서하고 싶습니다. 저분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독재정권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서울고등법원 421호 가족 간첩단 사건의 마지막 재심 대상자 선고가 있었다.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으며 "권력의 법원이 무고한 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환을 떨칠 수 없다"고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라는 말을 들을 때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오열했다. '간첩의 아내'로 살아야만 했던 30년간의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간첩의 자식이라는 한 맺힌 자녀들의 올무가 풀렸다. ‘그때 내가 이를 악물고 비명만 안 질렀어도 남편이 간첩이라고 거짓말로 자백은 안 했을 텐데….’ 열린교회/김필곤 목사/콩트/하늘 바구니/2010.11.7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무고한 자의 억울함을 옹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일이다.

적용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되, 진정한 무죄가 드러나도록 기도하자.

무죄정의억울함평등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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