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길 혹은 자기 완성의 길을 가기 위하여 반드시 무슨 ‘주의자’(-ist)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런 길은 자기 아닌 다른 길을 갈 위험이 더 큽니다. 그리고 종국엔 자기 파괴로 불타버릴지도 모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영혼일수록 자신의 길에서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더 느끼기에 쉽게 탱크와 같은 ‘주의자’의 벙커로 도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벙커 안으로 도피할 뿐 아니라 세상과 타인들 그리고 다른 그 다양한 아름다움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포를 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율법주의자 군국주의자 공산주의자 근본주의자 IS 이러한 이들의 그 확고함은 테러를 부르고 생명을 죽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이들에 의하여 정치적 종교적 테러를 당하신 것이 아닐까요? 진정한 자기 완성의 길이란 자기 안에 자리잡은 그 확고함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대상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와 다른 많은 것들과 대화하며 공감하고 존중하며 길을 가는 길에서 얻어지는 그 사랑과 감동 기쁨과 가치를 누리는 과정인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마침내는 그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가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사랑의 제사가 되는 것이리라. 바로 그렇게 길을 내신 예수께서 저 지평선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주도적이지만 지배적 억압이 없어야 지속적으로 창조가 일어납니다. <이주연> <산마루서신 http://www.sanletter.net > 이 게시물을
설교 포인트
자기만의 길 혹은 자기 완성의 길을 가기 위하여 반드시 무슨 ‘주의자’(-ist)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런 길은 자기 아닌 다른 길을 갈 위험이 더 큽니다. 그리고 종국엔 자기 파괴로 불타버릴지도 모릅니다.
적용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보십시오.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신앙생활을 지향해보시기 바랍니다.